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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국내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by 셀자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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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선생님의 <모순>을 너무 재밌게 읽고, 최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서 보이길래 구매한 책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모순>은 내 인생 책 중에 한 권이 되었기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도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살 때는 몰랐는데, 90년대에 페미니즘에 열풍을 불러일으킨 책이라고 한다.
사실 요즘같이 편을 갈라서 서로 대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이 소설의 독서노트를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이에 하기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하지만 성의 대결이나 성의 우월을 가리기 위해 이 소설이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상처들로 무늬를 이룬 하나의 커다란 사진이다.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대립하지 않고, 각자 동등한 자리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 유용하 게 쓰여야 할 사진이다. 강민주의 테러가 잔인한 보복으로 끝나지 않고 가슴 더운 인간의 길로 접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이 소설이 여성소설의 범주에서만 읽히지 않고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유형무형의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 게 함께 읽히기를 감히 소망한다. 그것이 삶을 대하는 진정한 예의라고 믿는다. - p.357


내가 읽은 바도 여성소설, 즉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불합리함에 저항하는 소설에 가깝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강민주, 백승하, 황남기, 김인호이다.
강민주는 불합리하게 여성들이 받은 억압을 세상에 알리고자 유명 남자 배우 백승하를 납치하는 이야기이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고 강민주가 도대체 왜 백승하를 납치하는지 궁금해서 굉장히 빠르게 읽혔다.
특히, 양귀자 선생님 특유의 세상에 대한 시니컬한 문장들이 마음에 와닿았고,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을 아래와 같이 공유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원하지도 않는 친절을 베풀고는 돌려받은 보답의 양이 적다고 불평들을 해댄다. -p.17

격하게 공감...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고맙지? 고맙지?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이렇게 간결하게 긁어줄 일인가?

내 일기는 하루의 궤적을 남기는 데 필요할 뿐이다. 처음엔 내 시간들이 어디로 공중분해 되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미건조한 나열이지만 나중에 기억이 사라졌을 때 읽어보면 그 시간이 손에 잡힌 듯이 떠오른다. -p.28

예전에 써놓은 일기를 다시 읽을 때 그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요즘엔 일기를 잘 쓰지 않지만 나도 내 삶과 시간들이 공중분해 되지 않게 다시 일기를, 기록을 남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식 수준의 예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번번리 절감하곤 한다. -p.30

모든 삶은 길 위에 있다. 이 명제를 놓고 한 사람이 말한다.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 라고. 또 한 사람은 말한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라고. 두 사람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이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 시작된 여행이 다시 길이 시작된 곳에 이르러 끝나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하고있다. 애초 길은 없었다는 것. 애초 길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살고 있었을 뿐이다. 길은, 그것이 신작로거나 오솔길이거나 간에,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길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삶이 길 위에 있다는 말은 인간은 결국 고독한 순례자라는 뜻에 다름이 아니다. 순례자에게 길이 어디 있는가. 오직 고행의가시밭길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순례를 시작한다. 이유는 하나뿐. 길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내가 지나간 가시덤불들, 그것을 사람들은 훗날 ‘길’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가시에 찔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는 결코 어리석은 순례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삶은 길 위에 있다. 이 명제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은 계획이나 목적 없이 훌쩍 떠나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바보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얼마나 우스운 소리인가. 무계획이나 무목적 속에서 자유가 나온다는 발상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 자들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길을 향해 떠나기 전에 미래를 모두 계획한다. 그것이 길 위에 서서 뒤늦게 미래를 생각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내가 다른 점이다. - 강민주 노트에서 -p.39~40

100%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애초에 남들이 정해놓은 길이라는 것은 인생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무계획, 무목적의 여행에서도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대목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나의 길을 보여주기 위한 강민주의 오만함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누릴 자격이나 안목이 있다면 삶을 보다 편안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적당한 돈을 지급하고 대신 안락함을 얻는 일에 너무 인색하지 말 것.  -p.49

희생이라니, 고통의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그것이 미덕이라는 주장은 기득권을 쥔 자들의 염치없는 요구일 뿐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자들을 혐오한다. 그들은 정신의 진보를 억압한다. 억압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적이다. -p.72

진심... 너무 공감한다. 억압을 인내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건 말 같지 않은 소리다. 요즘은 이런 부분에서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참지 않는 MZ 세대 (positive)’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사회는 결국 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누구도 어떤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방식대로 살뿐이다. 선각자는 있어도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자신을 내던져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일은 존중받을 수 있으나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남을 지도하려 드는 일은 조롱받아 마땅하다. -p.86

좋은게 좋다니.
나는 평소 그런 소리를 가장 싫어한다. 도대체가 앞의 좋은 것은 무엇이고 그래서 얻어진 뒤의 좋은 상태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마치 바보들의 대화처럼 들린다. 논리나 분석은 전혀 없는 이해조차 불분명한 말장난들. -p.110

’고통의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

희고 말간 것은 싫다. 탱탱하고 반들거리는 피부도 싫다. 한 번도 깨져 보지 않아 굳은살이 배기지 않은 삶은 정상적인 삶의 행로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삶은 가짜다. 역사가 없는 것이다. -p.144

굳을살 배기지 않은 것이 무조건적으로 비정상이고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결국엔 깨져야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는 공룡 알처럼 부딪혀봐야 나의 인생도 다채롭고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바닥까지 추락하지 않고서는 비상의 날개를 사용할 수 없는 법이니까. 더는 떨어져 내릴 곳이 없으면 별수 없이 기어서라도 다시 올라와야 하는 법이니까. -p.187

잠깐의 궤도이탈이 주는 의외의 신선함을 즐겨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p.211~212

비록 적군이라 해도 가끔은 동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 삶이란 이름의 연극이므로. -p.262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구절이다.

남자들의 눈물은, 나마들의 절망은, 아니, 남자들의 젖은 날개조차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모든 젖어있는 것들은, 그것이 여자의 얼굴이건 남자의 얼굴이건 관계없이 나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서서히 깨닫는다. 모든 젖어있는 것에 나는 태연할 수 없다. 젖은 얼굴의 비애 앞에서 나는 꼼짝도 못한다. -p.301

”무대에 오르는 배우한테는 관객의 심판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심판이 더 무서운 법이오. 무대 위에 서보면 금방 알 수 있소. 어느 순간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는 자책이 들면 끝장이오. 그때부턴 연기의 중심을 잡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오. 그런 일이 생길까봐 두려운 것이오.“ -p.329

결국은 자기 검열의 문제. 내 자신이 나의 삶에 확신을 가진다면, 남들이 어떻게 판단하던 무슨 상관일까? 반대로 자기 확신이 없고, 자책이 드는 순간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삶도 추락하는 법이다. 요즘 조금 우울했었는데, 내 삶에 후회가 없게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 대목에서 백승하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알아야 할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가. 알아야 할 것에 비하면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p.336

요즘 항상 느끼는 것이다. 점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감에 따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알아야 할 것들은 하나하나 알아가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나의 문장 수집으로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겼다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편견을 가지지 않고, 억압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그 당시 여성들이 받았던 억압을 이해하며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강민주의 대사들은 남자들은 똥멍청이이고, 여성들은 억압을 받아왔다고 공격적으로 말하기에 남성 독자들은 분명 불쾌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강민주가 백승하라는 ‘남자’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강민주의 고정관념 밖에 분명 좋은 남자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부분이기에...

이 소설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꼽자면, 소설을 시작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강민주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결국엔 이 결말이 아니면 달리 낼 수 있는 결말이 없기에 예상이 가능했다는 점이 좀 아쉽긴 했다. (스포 방지를 위해 결말은 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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