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독서노트는 정말 오랜만에 올리는 것 같다.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산문집)인 무정형의 삶. 김민철 작가가 오랜 시간 로망으로 간직하던 파리에서의 삶을 실현하는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파리에서 나만의 책상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로망이자 꿈이었던 김민철 작가는 자신의 평범한 삶에 순응하던 중 자신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파리에서 두 달 살기에 돌입한다.
퇴사 후 파리에서 2개월 동안 지내면서 있었던 일과 감정, 깨달음을 산문집으로 엮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퇴사의 꿈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하니...).
자신의 직업이 천직이자 꿈이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설사 꿈이어도 직업이 되는 순간 스트레스는 찾아오기 마련이니...), 현실을 생각하면 실현하기는 꽤나 어렵지만 이렇게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김민철 작가는 직장 생활이 20년쯤 되었을 때 퇴사를 결심한다. 그리고 파리로 간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저지르고 만다.
일단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저지르는 용기가 너무 부러운 책이었다.
내용은 쉽게 읽히고, 간혹 ‘맞아... 이럴 땐 이런 깨달음이 있었지...’하며 공감이 많이 가는 에세이이다.
김민철 작가님은 ‘무정형의 삶이어도 괜찮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모여서 내가 될 거야. 그게 설사 정해지지 않은 모양이더라도....’라는 메시지를 내게 던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친구와의 여행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여행 친구를 선택하는 건 실은 어떤 여행 세계를 선택하느냐와 같은 문제라는 걸 깨닫는다. 좀 더 친숙한 세계를 택할 것인가, 좀 더 모험심 가득한 세계를 택할 것인가, 요리와 술이 넘치게 흐르는 세계를 택할 건인가. 천천히 오래 보는 세계를 택할 수도 있고, 빠르게 많이 경험하는 세계를 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게 새로운 세계가 찾아왔고, 덕분에 나는 완전히 다른 파리에 도착했다는 사실이었다. - p.126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진짜 찐으로 공감했다.
술을 안 마시는 친구와의 여행. 운전을 못하는 친구와의 로드 트립.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와 먹는 걸 안 좋아하는 친구.
함께 가는 사람이 달라짐에 따라 내 여행의 형태가 변했다.
맞다. 여행하는 친구의 세계를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 친구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때로는 친구의 나와 다른 세계 때문에 내가 그동안 서운하기도 했구나 싶었다 (그 당시 어렸던 것도 한 몫했다.).
혼자 있을 때도 나는 선을 넘지 못한다.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거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결국 들킬 것 같고, 결국 망할 것 같다. 불안한 건 질색이다. 영화를 보다가도 등장인물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면 그때부터 엄청나게 불안해한다. 왜 저래. 하지 마 좀. 하지만 선을 넘어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을 넘어야 비로소 인생은 풍성해진다. 20년 만에 회사라는 울타리를 넘는 용기를 내놓고도, 여기서 또 고분고분하게 주변만 알짱거리고 있는 내 손을 붙들고 친구가 선을 넘었다. 그 순간 나를 찾아온 해방감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막혀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 구석구석까지 바람길이 나는 것 같았다. 내내 접혀 있던 날개가 살짝 펼쳐진 것도 같았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숨을 아주아주 깊숙이 들이마셨다. 오늘 이 풀밭의 첫 주인공은 우리다. - p.139
이 부분도 작가님이랑 나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도 선을 잘 넘지 못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는 선을 넘어야 만날 수 있다.
그동안 루틴한 삶을 살아왔는데, 조금은 그 틀을 깨고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구절이었다.
뒤에도 작가님이 동네에서 헤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항상 집-회사-집을 항상 똑같은 길로 갔었는데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동네가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나도 헤매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해외에서 오랜 시간 살아보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대리만족하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나도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용기를 불지펴주는 책이었다.
나도 오늘 하루하루를 틀에 박히듯 모양이 정해진 건 아니어도 잘 살았다고 생각하게끔 내 삶의 한 조각조각을 모아봐야겠다.
(참고로 김민철 작가님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내 책장에 김민철 작가님의 ’모든 요일의 기록‘ 책이 꽂혀있었다.
약간 나랑 감성이 비슷하신 분인가...?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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